• [26일 세계 피임의 날] '피임 까막눈' 청소년들 "인터넷에 물어요"

  • 작성자 : awhy3088 작성일 : 2016-10-05 조회수 : 5

[26일 세계 피임의 날] '피임 까막눈' 청소년들 "인터넷에 물어요"

학교 성교육 시간은 '자습시간' 전락 / "성인된 후에 성관계 맺으란 말뿐" / 거의 사전·사후 피임약 구분 못해 / “건강 해친다” 오해에 복용도 꺼려 / 임신 경험 청소년 10명 중 7명 낙태 / “성인들도 무지… 현실적 교육 절실”
“(성관계 후에도) 사전 피임약을 여러 알 먹으면 피임이 되는 줄 알았어요.”

서울에 사는 고교생 A(17)양은 학교에서 제대로 된 피임 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성교육 시간은 비디오를 틀어놓는 ‘자습’시간이다. A양은 “학교 수업은 어려운 용어 풀이만 하는 데다 성관계는 성인이 된 뒤에 맺으란 얘기뿐”이라고 말했다. 고교를 중퇴한 B(19)양은 몇 해 전 대학생 오빠와 교제하던 중 덜컥 임신이 됐다. 평소 생리가 불규칙한 탓에 임신 사실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언제나 “책임지겠다”고 장담하던 오빠는 연락이 두절됐고 B양은 출산 이후 시설에 몸을 맡긴 상태다.

‘세계 피임의 날’이 26일로 제10회를 맞았다. 국제사회에서 여성의 인권과 자기결정권이 한층 강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피임에 대한 무지와 오해, 괴담이 횡행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이다. 특히 청소년 임신문제가 심각한 사회 이슈로 대두해 관련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5일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 김은애 교수 등 3명이 최근 수행한 ‘청소년 여성의 성교육 경험 및 피임제 인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은 거의 사후피임약 구입에 처방전이 필요한 사실을 몰랐다. 피임 관련 정보 역시 ‘불확실한 통로’에 의지했다.


궁금한 점이 생길 때 처음 찾는 곳은 인터넷 카페의 ‘성(性) 게시판’과 ‘네이버 지식인’이었다. 한 응답자는 “병원 사이트에는 실제 상황에서 적용할 정보가 없다”며 “당장 궁금한 내용은 인터넷 검색에 기댄다”고 말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오른 ‘피임약’ 관련 질문은 올해 1월 이후 3만4000건에 달했다.

사전·사후 피임약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사후에 복용하는 피임약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청소년들은 피임약 복용을 꺼리는 이유로 ‘건강을 해칠 것’이란 불안과 불임 등 부작용을 꼽았다. 이번 연구는 실제 피임약을 복용한 청소년 여성 20명을 4개월 동안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결과다.

이 같은 학교 교육의 부재는 성인으로 이어진다. △기형아를 출산한다 △자궁에 혹이 생긴다 △불임이 된다는 식의 괴담이 사실처럼 퍼져 있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서석교 교수(산부인과)는 “근거도 갖추지 못한 루머, 괴담 때문에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경구피임약 복용률이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30∼40%에 달하는 유럽 국가들과 달리 국내 경구피임약 복용률은 3∼5%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오해와 무지는 결국 낙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10대 청소년 1만1942명이 임신과 출산 관련 진료를 받았고, 같은 기간 임신을 경험한 청소년 10명 중 7명이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2011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연간 낙태 건수(추정)는 16만8738건에 달했는데 사유로는 ‘원치 않는 임신’(50.7%)이 가장 많았다.

김 교수는 “‘피임’의 무게감을 깨닫지 못하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며 “‘보다 현실적인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진 피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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