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도] 장혜영 "성폭력 피해 밝히니 또 다른 고통의 세계가 열렸다"

  •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2-22 조회수 : 124

 

[삶도] 장혜영 "성폭력 피해 밝히니 또 다른 고통의 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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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삶도 그 후'-국회의원 장혜영
“콜로세움에 세워진 기분, 가해자 다음은 피해자”
“혼자 남겨진 이들에게 등돌리지 않는 정치 꿈꿔
‘나는 결코 당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외치고 싶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19일 서울 국회에서 만났다.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넥스트 100인’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한호 기자

새해가 밝은 지 두 달 남짓, 삶의 절망과 희망을 오갔다. 당 대표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힌 국회의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타임 넥스트 100인(TIME 100 Next 2021)’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한국인. 50일간 장혜영(34) 정의당 의원의 이름 앞에 달렸던 수식어다.

성폭력 사건을 딛고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중인 그를 19일 국회에서 만났다. 그는 “성폭력에 침묵해도 고통스럽지만, 말하는 순간 또 다른 고통의 세계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페이스북으로 피해 사실을 대중에게 밝히며 “영원히 감추고 살아간다면 거꾸로 이 사건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었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또 다른 고통’ 속에 있었다.

“피해 사실을 말하고 나서 미궁을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미궁 끝에 다른 세상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미궁이더군요.”

정의당 대표단이 성추행 가해자인 김종철 전 대표를 직위 해제하고, 당 징계기구인 중앙당기위원회가 최종 제명 결정한 건 순리이자 상식이었다. 당헌과 당규의 절차대로 이뤄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부에선 피해자에게 되레 “왜 고소를 하지 않느냐” “피해 사실은 왜 안 밝히냐”고 했다. 당내에서도 “이 사건으로 당이 망하는 것 아니냐”며 피해자를 책망하는 듯한 목소리가 왜 없었겠나.

그는 자신이 겪은 상황을 콜로세움 경기장에 빗댔다. “콜로세움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 있는 거예요. 군중은 두 사람이 싸우는 걸 지켜보고 있죠. 가해자가 쓰러지면 그 다음은 피해자를 몰아가는 기분이에요.”

다행인 건 그는 주저앉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 “행복하지 않더라도 이게 내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직시하고 돌파하겠다는 말을 요즘 많이 되뇌어요.”

마침 타임지에서 들려온 낭보는 그에게 앞으로 나갈 동기를 부여했다. 인터뷰를 한 19일은 그 소식이 전해진 지 이틀 뒤. 그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며 “국회에 들어와 주장한 가치들이 소수자만을 위한 게 아닌 인류의 미래를 위해 보편적으로 지향할 만한 것이라는 인정을 받은 듯해 기쁘다”고 말했다.

그를 ‘삶도’ 인터뷰에서 만나는 건 3년 전(▶기사 보기)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17년간 장애인 시설에서 지내던 발달 장애 동생을 데리고 나와 함께 사는 자립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감독 출신이다. 그런 그의 삶을 담은 기사는 적잖이 화제가 됐다.

그 뒤 지난해 12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장 의원을 눈여겨본 타임지 기자가 인물평을 부탁해온 거다. 기자로서 인터뷰 때 받은 인상과 납세자이자 유권자로서 그의 의정을 지켜본 소감을 짧게 평가해 전했다. ‘타임 넥스트 100인’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물론 그 전후로 장 의원과 연락을 주고 받은 적도 없다. 장 의원은 “타임지로부터 선정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다”며 전화를 해왔다.


◇“타임지 선정으로 롤러코스터 탄 기분”

그는 ‘타임지’의 선정 소식이 담긴 이메일을 설날 받았다고 한다. “이메일을 보고도 비현실적이라 기분이 이상했다”며 “설날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이한호 기자

-타임지의 ‘넥스트 100인’ 선정 소식은 언제 들었나요.

“작년 말 검증 절차에 들어갈 때 프로필과 질문, 몇 가지 자료를 요청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진짜 선정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설날에 이메일로 연락을 받고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요.”

-정신을 차리고 의미를 곱씹어 봤을 텐데요.

“국회에 들어와서 발의한 주요 법안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과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에요. 이걸 두고 ‘소수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시선이 있었어요. 그런데 타임지 선정으로 ‘이건 인류가 보편적으로 미래를 위해 지향할 만한 가치다’라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기뻐요.”

‘넥스트 100인’은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100 Most Influential People)’에 이어 2019년부터 발표하는 부문이다. 각 분야에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100명의 떠오르는 차세대 리더를 선정한다.

-올해 두 달 동안 좋고 나쁜 일이 연달아 일어났어요.

“맞아요.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정말 롤러코스터 같은 시작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성폭력을 겪지 않고 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죠.

“그렇죠. 구조의 문제니까.”

-지난달에도 밝혔지만, 살면서 무수히 성폭력을 겪었더라도 헌법기관이 되어서까지 당할 줄은 쉽게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더 심정이 복잡했을 것 같고요.

“너무나 익숙한 절망감 있잖아요. 너무 놀라운데 놀랍지 않은 기분. 살면서 수없이 겪었던 그 일이 반복된 것이기 때문에요. ‘여기서까지 내가 이걸 겪어야 된다고?’하는 절망감이 거기에 더해졌죠. 지금까지는 (성폭력을 당하면서) 참고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보호했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사건을 겪은 직후 바로 판단을 그렇게 한 거군요.

“네, (문제 제기를 한다면) 가능한 빨리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한 인간이자 입법기관으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죠.”

그는 이 대목에서 한참 조목조목 부연해 설명을 했다. 자신의 대처가 이른바 ‘피해자 대응의 정석’처럼 여겨질까 봐서다. 모든 피해자가 곧장 피해 사실을 밝히거나 가해자 혹은 가해자가 속한 조직에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피해자다운 것인지’ 잣대를 만들어 휘두를 수 있잖아요. 피해자들을 다 줄 세워놓고 ‘너는 왜 저 사람처럼 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택한 방식이 그런 데에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간 말을 줄였던 것이고 지금도 최대한 정돈해서 말하려고 해요.”


◇당의 상식적 대처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현실

그가 ‘김종철 사건’ 이후 장시간 인터뷰에 응한 건 처음이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의 말이 ‘피해자다움’의 전형으로 여겨질까 봐 말을 고르고 골랐다. 이한호 기자

-정의당의 대처가 통상 다른 조직과 달랐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죠.

“달리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성폭력 사건에 비상식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상식적인 대처가 상대적으로 훌륭하게 보이는 거죠. 당 강령에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명시돼 있고 당헌ㆍ당규에도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절차가 세세하게 규정돼 있어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어진 규정이죠. 그러니 그 원칙과 절차대로 대처를 한 거예요.”

-당내에 문제 제기를 한 뒤 페북으로 대중에도 피해 사실을 공개하면서 ‘청소년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성폭력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못했다’는 고백을 했어요. 과거와 달리 말하고 나니 뭐가 달라지던가요.

“(한숨을 쉬며) 그 전까지 성폭력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 깨달았어요. 참는 것도 고통인데 참지 않는 순간 그때부터 완전히 다른 고통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죠.”

-어떤 고통이었나요.

“예를 들면, (가해자였던) 당 대표는 당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대표와 연결된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있어요. 대표의 잘못과 무관하게 그들도 함께 흔들리는 거죠.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들은 성폭력이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세계가 영향받고 흔들리는 것 역시 싫은 거예요. 그러니 은연중에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목소리를 낸다는 건 그런 구조와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가해자 징계로 끝나지 않는 미궁

그는 “(성추행) 사건 직후 본능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이 됐고 그걸 따랐다”고 했다. 이한호 기자

-그것과 마주하는 심정이 어땠나요.

“(한참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더니) 저 잠시 물 좀 더 마셔야겠어요. (그 생각을 하니) 입이 바짝바짝 마르네요. 제가 겪은 일을 말하고 나서 미궁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 미궁을 빠져나가면 다른 세상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미궁이구나 싶어요.”

-그거 정말 절망스러운 느낌인데.

“하지만, 이것이 내가 마주하고 살아야 하며 바꿔야 하는 현실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어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 일행이 그 지옥 같은 세계를 빠져 나와서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고 달려가는데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요.”

-보통 가해자 징계나 처벌로 사건이 끝난다고 생각하죠.

“저도 가해자가 진실을 인정하게 하고 적절한 징계를 받게 하면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죠.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어떤 학습으로 남을 것인지의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건 구조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이죠. 그게 아직 미궁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면 존중받을 수 있는 한 인간으로 일상에 돌아갈 수 있을까를 찾아내야 하는 미궁.”

-‘사건의 실체를 왜 밝히지 않느냐’가 논란이 되는 수준의 사회니까요.

“‘성폭력은 구조적인 문제다’라는 문장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는 건 성폭력 사건이 구조적 차원의 문제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어디를 만졌는지가 중요한가요? 본질은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고 그게 가장 충격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거기다 ‘왜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느냐’고 질타하는 세력도 있고요.

“정의당이라는 공동체도 이 사회에 속한 하나의 작은 단위니까 필연적으로 이 사건은 사회 전체로 확장될 수밖에 없어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여전히 구경꾼의 위치에 선 이들이 많죠. 그럴 게 아니라 함께 공동체적인 해결 방법을 만들어 나가야 하잖아요.”


◇우리는 피해자 선택 존중할 준비 돼있나

그의 인터뷰는 3년 전처럼 희로애락이 응축된 시간이었다. 그는 성폭력 사건 이후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말할 때는 오히려 숨을 고르고 감정을 자제했다. 참았던 눈물이 터진 건 ‘정치를 하는 이유’를 말할 때였다. 이한호 기자

-“피해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오히려 거꾸로 스스로를 그 사건에 가둘 것”이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누구도 절대 대신해줄 수 없는 게 바로 내가 나를 존중하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되는 거죠. 어떻게 행동할지는 다음이고요.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길이 있는데 그 선택지가 스스로를 존중한 결과라는 게 중요해요. 어떤 선택이 옳은지 정해진 건 아니에요.”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경우 피해자가 ‘왜 침묵했을까’ 자책하기도 하는데요.

“이 사건 이후에 여러 선배 여성 정치인들이 그런 말을 했어요. ‘미안하다. 그때 우리가 싸우지 않아서 똑같은 일을 겪게 했다’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선택을 자책하지 않았으면 해요. 가해자가 나쁜 거지 왜 당신이 미안한가요. 훨씬 중요한 건 ‘말하지 않은 피해자가 언젠가 말하려고 할 때 우리 공동체가 들을 준비가 돼있는가’예요. 피해자 주변이 어떤 환경을 만들고 있는지.”

-그런데 아직도 이 사회에선 피해자에게 되레 ‘왜 이제야 말했느냐’ ‘왜 참다가 지금 문제를 제기하느냐’고 의심하고 손가락질하기도 해요.

“그러니까요! 저도 콜로세움 경기장에 서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 있고 사람들이 두 사람이 싸우는 걸 지켜보는 거죠. 가해자가 쓰러지면 이제 피해자가 어떻게 되기를 기다리는 기분이에요.”


◇의원의 성폭력 피해에 침묵한 국회

-이 사건으로 당이 임시지도체제로 전환됐고 다음달 새 당 대표 선출 과정도 험난할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이 사건이 환기될 수도 있고요.

“저는 정의당이라는 조직을 신뢰해요. 가해자가 있었던 당이기도 하지만 피해자가 있는 당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마음에 남아요. 함께 회복해 나가는 중이라고 믿어요.”

-모든 사건은 의미를 남긴다고 생각해요. ‘김종철 사건’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직 끝나지 않아서 어떤 의미인지 말하기가 어려워요. 다만,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인지 성찰하고 배우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현직 국회의원이 피해자이고 다른 정당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국회 차원의 변화 움직임은 없나요.

“그 부분이 좀 놀라워요. 저는 정의당의 청년 초선 의원이기도 하지만 21대 국회 300명 의원 중 한 명이잖아요. 어느 누군가는 이 문제가 가진 구조적 함의에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정말 아쉬웠어요.”


◇‘국회의원 장혜영’이 별 거냐

그의 의원회관 사무실 한편에는 기타가 놓여 있다. 그는 “힘들 때 혼자서 연주를 하며 견뎠다”고 했다. 그가 의정활동의 의지를 다지며 쓴 메모나 동생이 적어준 편지, 지지자들의 응원 쪽지도 곳곳에 붙어있었다. 이한호 기자

노래와 춤을 즐겼던 동생 혜정씨의 근황이 궁금했다. 혜정씨는 중증 발달 장애인이다. 장 의원이 2018년 만든 다큐 ‘어른이 되면’에는 동생을 장애인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겪는 여러 에피소드가 나온다. 수긍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이뤄진 단 20분의 심사로 고작 한 달 94시간, 그러니까 하루 3시간꼴의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배당 받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장 의원이 생계를 꾸리려 일을 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 결국 그는 공적 서비스를 포기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로 ‘사적인 활동 보조 체계’를 만든다.

-동생 혜정씨는 언니가 바빠져서 불만은 없나요?

“오히려 아주 행복하죠. 하하. 저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워져서요. 제 동생은 늘 자기 인생에 관심이 있지 언니 인생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삶의 중심을 잡는 데 가장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동생이에요.”

-어떤 영감과 영향인가요.

“의원이 되기 전과 후 저를 똑같이 대하는 유일한 사람이 동생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있는 건 소중한 일이네요.

“네! ‘그게 뭐 대수야’ 생각하는 거죠. 내가 누구로 살아갈 것이냐가 중요하지, 내 이름 뒤에 붙는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저를 사심 없이 대하는 동생이 매번 알려주는 거예요.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은 정말 복이죠.”

-삶의 가치를 내면에 두도록 도와주는 존재군요.

“맞아요. 정치의 속성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 자체로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귀를 활짝 열어놓고 있어야 하는 직업인데, 해보니 그래서 길을 잃기 쉽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매일 집에 돌아가면 ‘언니, 커피 사왔어?’라고 묻는 존재가 있는 거죠. 동생에게는 제가 ‘국회의원이냐, 아니냐’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왔는지가 훨씬 중요하거든요. 하하. 그러니 매일 ‘그렇지. 내가 결국 이런 일상을 지키고 싶어서 이 모든 걸 하는 거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뽑힐 권리는 제쳐둔 자신과 마주하다

그는 “짬이 날 때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의 벽에 붙은 대한민국 임시헌장 전문을 읽어보길 즐긴다”고 말했다. 헌정의 뿌리가 거기에 있어서다. 그는 특히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급, 빈부의 계급이 없이 일체 평등하다’고 명시한 3조에 눈길이 머문다고 했다. 그가 대표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정신은 이를 되살리자는 취지다. 기자의 요청에 로텐더홀에서 손을 내미는 장 의원. 이한호 기자

그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청년 인재로 영입해 국회에 입성했다. 2019년 가을 심 전 대표가 직접 연락을 해왔고 식사를 하며 입당을 제안한 일화는 이미 알려져있다.

-심 전 대표가 연락하기 전까지 정치를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전혀 없었죠, 전혀! 정치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건 시민으로서였죠. 또 다큐멘터리로, 또 장애인 인권 운동으로 공론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고 여겼고요. 대의정치는 꿈도 안 꿨죠.”

-그럼 심 전 대표의 제안을 받고 어땠어요.

“점심 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들었는데, 속으로는 내내 ‘어떻게 거절하지. 어떻게 거절해야 예의가 있는 걸까’를 고민했죠. 당장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해보겠다’고만 하고 헤어졌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건 내가 평소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더라고요. 이게 뭔지 생각조차 안 해보고 ‘싫어’하면서 회피부터 하고 있었던 거죠.”

-직시해보니 어떻던가요.

“정치를 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는 거고, 나는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를 느꼈죠. 그리고 고민했어요. 정치가 일부 사람만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들만의 그렇고 그런 정치가 되는 것 아닌가, 왜 나는 누군가 뽑을 권리만 있고 뽑힐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한 달을 고민했고 그는 결정했다.

그는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도 아닌 그 밖에서 자랐다.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는 혹시 운동장 밖 사람들을 희생해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 이에 분노하지 않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라고 출사표에 썼다.

-운동장 밖에서 자란 경험은 정치를 하는 데 어떤 밑거름이 되던가요.

“더 다양하게 살아보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회의원은 많은 이들의 삶을 대의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꾸준히 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그걸 알아주는 이들이 잘하고 있다고 해줄 때 진짜 좋아요.”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처음과 비교해 더 진화했나요.

“그 의미가 더 두터워지고 분명해졌어요. 정치하는 이유는 원칙이니까 그 마음을 지키는 게 중요하잖아요. 실제 의정생활을 해보니 수많은 상황 속에서 시험을 당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역사가 쌓이겠죠.”


◇정치, 숨을 참고 잠수하는 기분

그는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인 “당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절박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가가고 싶은 마음, 그 길목에서 터진 예상치 못한 사건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힘든 마음.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만든 감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한호 기자

그래도 그는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크고 작은 입법 열매를 맺었다. 대표적인 게 ‘개정 장애인활동지원법’이다. 장애인 활동 지원제도는 만 65세 이상이 되면 혜택을 받을 수 없어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렸다. 그 원인이 된 독소조항을 폐지한 거다.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1호로 낸 법안이었다.

-임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장 의원의 성과가 주목을 받았죠.

“다행이에요. 정말 잘하고 싶었거든요. 심 전 대표께 ‘입당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나서 엉엉 울었어요. 저도 깜짝 놀랐죠. 무서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뭐가 무서웠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간다는 실감이 드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래도 다큐 감독이 무슨 말을 하면 대체로 그래도 진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정치인이 말하면 다 거짓말일 거라고 여기잖아요. 나를 믿게 할 유일한 방법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섭더라고요.”

-부담감이 엄청났군요.

“비유하자면 끊임없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그 바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목소리로 이뤄졌는데, 그 아래로 계속 잠수하는 거죠. 심지어 계속 물은 불어나고요. 그래도 나는 끝까지 숨을 참고 바닥으로 내려가서 그 밑에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와야 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바로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거예요!’하면 그제야 사람들이 그걸 보고 ‘아, 그거였어’하고 알게 되겠죠. 그 전까지는 무슨 오해를 받아도 어쩔 수 없어요. 국회란 그런 곳이라는 걸 느껴요. 그게 이곳의 룰이죠.”

-권력 의지도 생길 법한데요. 소수당의 한계 때문에 정의라고 여긴 법안이 다수당에 의해 좌절될 때는 특히.

“아, 정말 이글이글 생기죠!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좌초되고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은 유예된 채) 만신창이로 통과되는 걸 보면서 말 그대로 권력 의지가 샘솟았어요. 힘이 없어서 너무 분했죠.”


◇늘 혼자 남겨지는 쪽이었기에

-국회의원으로서 목표가 ‘마지막 한 사람을 놔둔 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돌아서지 않는 것이라고 했어요. 살아온 삶에서 얻은 거겠죠.

“맞아요. 저는 늘 남겨지는 쪽이었거든요. 항상 예외였죠. 그런데 그게 정말 외롭고 비참한 일이에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그런 메시지가 정말 필요했어요. ‘나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아요.’ 사람이 아주 힘들 때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 최소한 둘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만 있어도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다 나를 등졌다고 여겨질 때 포기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 쩌렁쩌렁하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나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누구든, 이름도 잘 모르지만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가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외침이 울음과 뒤섞여 처절했다.

“정치가 별 게 아니에요. 결국은 사람들한테 연결되는 능력이에요. 중앙정부가 있고 그 끝에 주민센터가 있잖아요. 그건 결국 대통령과 시민이 연결되는 구조예요. 누구도 혼자서 외롭게 다치거나, 아파하거나, 죽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인 거잖아요. 그것이 우리가 (한 해 정부 예산) 558조원을 들여서 국가를 운영하는 이유죠.”

-3년 전 ‘삶의 도’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내가 납득할 답을 얻기 전에는 계속 질문인 상태로 남겨두는 것. 각자 삶의 답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가면 되니까”라고 했어요. 국회에 있는 지금은 어때요.

“마찬가지예요. 특히 국회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대단하고 멋진 일이에요. 망원경과 현미경을 가지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요.

“코로나19 이후 첫 사망자가 나온 곳이 청도대남병원 폐쇄 정신병동이잖아요. 사망자는 20년 이상 폐쇄병동에서 지냈고 몸무게는 42㎏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폐쇄 정신병동의 열악한 운영 실태가 도마에 올랐었죠. 그럼 그 이후 청도대남병원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자료를 요청해 받아보니, 95명 중 91명이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시 민간 정신병동으로 보내졌어요. 그 이전으로 돌아간 거예요. 그렇게 구조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해결할 힘이 국회엔 있는 거죠.”

-3년 전 ‘삶도’ 인터뷰를 한 게 어떤 의미였나요.

“인생을 정말 탈탈 털어가시더라고요! 삶을 터는데 울지 않을 방도가 있나요? 하하. 내 속내와 내가 살아온 시간을 털어놓을 수 있고 그걸 들어준 이가 (글로) 소화해낸 내 삶을 다시 바라보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정치는 본디 사람을 설레게 만들어야 한다.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드는 과정이니까. 그런데 현실 정치는 반대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기대로 두근거리게 하는 정치인을 마주했다. 이 청년의 심장이 정치의 맥을 다시 뛰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가고 있으니 기다려주세요. 당신을 결코 혼자 남겨두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정치인이 여기에 있다.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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